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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과 일상
조선 초기의 민본정신은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이 주창한 통치 철학으로, 백성을 중심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조 반정을 기점으로 이러한 민본정신은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훈구파의 기득권 확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세조 반정 이후 훈구파의 정치적 기득권 강화와 조선 초기 민본정신의 후퇴 과정을 한명회와 세조, 그리고 예종과 성종, 연산군에 이르는 정치적 흐름 속에서 분석하고자 합니다.세조 반정과 훈구파의 등장세조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면서 훈구 세력을 대거 등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명회는 세조 반정의 핵심 인물로서 훈구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한명회와 같은 훈구파 인물들은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
훈구파의 정치적 유산: 조선의 초기 중앙집권화와 그 한계훈구파(勳舊派)는 조선 초기에 세조의 집권과 함께 등장한 정치 세력으로, 공신 체제와 군공(軍功)을 기반으로 중앙 권력을 장악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훈구파의 정치적 유산은 조선 초기 중앙집권 체제를 공고히 다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그들의 정책은 여러 한계와 부작용을 동반하며 조선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습니다.1. 훈구파의 중앙집권적 정책(1) 공신 중심의 권력 강화훈구파는 세조의 찬위 이후 공신(功臣)으로 임명되어 국가의 주요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훈구파는 왕권 강화를 위해 중앙집권적 제도를 추진하며 지방 호족 세력과 사림의 성장을 견제했습니다.집현전 폐지: 세조는 훈구파의 지원을 받아 집현전..